왕세자의 입학식
이 시리즈 괜찮다. <처녀 귀신>에 뒤이어 읽은 시리즈인데, <한국의 문화>를 인문학으로 풀어낸 책들이다. 책내용은 비교적 짧은 분량이지만 참 알짜배기다. 앞으로도 쭉쭉 출간을 한다고 하니 살짝 기대를 한다. 조선시대에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에 아주 성대한 식을 치뤘단다. 궁궐에서 출발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문묘 를 향해 공자에게 예를 올리고, 이어서 여러 성인들에게 차례대로 예를 올린 뒤에 스승으로 모실 분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다시 궁궐로 돌아오기까지 아주 어렵고 복잡한 절차를 고작 8살난 어린 왕세자가 치뤄야 했단다. 그 때문에 왕세자의 입학식을 13살에 치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8살에 치루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단다. 그렇지만 모든 왕세자가 다 어린 나이에 입학식을 치뤘던 것은 아니고, 전란을 치룬 광해군이나, 소현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위에 올라야 했던 봉림대군(효종), 그리고 왕세자가 아니라 왕세제(왕의 동생)였던 연잉군(영조)은 훨씬 늦은 나이에 입학식을 치루기도 하였단다.복잡하고 힘든 왕세자의 입학식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왕세자가 스승을 모시는 장면이었다. 마치 유비가 제갈공명을 모셨던 것에서 유래한 삼고초려 처럼, 아니 마치 임금의 자리를 넘겨주는 선위 를 치루는 것마냥 왕세자가 신하에게 스승이 되어 달라고 구걸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이 <왕도정치>를 구현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신하가 될 사람이지만 스승으로 모시는 분에게 예를 다하는 것이 유교의 도리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왕이 되고 난 뒤에도 수많은 신하들에게 예를 받는 자리에 있다하더라도 스승이었던 신하에게만은 왕일지라도 함부로 하대할 수도 없고, 오히려 왕이 예를 다해 모셔야 한단다. 조선시대에 얼마나 예를 숭상했는지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얼마나 극진히 모셨냐면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에는 스승은 책상 위에 책을 놓고 경연을 하면, 왕세자는 바닥에 책을 놓고 엎드린 자세로 가르침을 받아야만 했단다. 이를 두고, 자세가 불편하고, 유교 경전을 바닥에 놓는 것이 예가 아니니 왕세자에게 책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을 임금이 직접 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스승의 경연을 들어야 했던 왕세자로서는 어지간히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성균관에 입학한 왕세자가 배웠던 교과서는 <소학>과 <대학>이었다. 간단히 소개하면, 소학은 유교적 예법을 배우는 책이고, 대학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와 같은 유학의 교리를 배워 나라를 잘 다스리는 성군이 되라는 뜻으로 배웠단다. 왕세자가 입학하는 나이가 8살이 원칙이니 <소학>이 기본 교과서다. 이는 왕세자뿐 아니라 유학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처음으로 배우는 기본적인 책이니 그닥 이상할 것이 없다.그러나 앞서 늦은 나이에 입학한 왕세자도 있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비교적 나이든 왕세자의 경우 이미 <소학>을 뗀 지 오래인데 다시 <소학>을 배우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하여 종종 <대학>을 교과서로 쓴 경우도 있단다. 쉽게 이야기하면, <소학>은 초등학교 교과서이고, <대학>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인 셈이다. 스무 살이 넘은 왕세자의 경우 초등학교 교과서로 공부하면 이상할 것이고, 이제 갓 열 살을 맞이한 왕세자가 <대학>을 공부하는 것이 이상하다 하여 임금과 신하가 종종 실랑이를 했단다. 요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을 것 같은 꼬투리를 잡고서 하릴없는 논쟁을 일삼는다는 비판이 일 법도 하다. 그러나 조선은 유교를 기틀로 삼은 나라이고, 유교는 <예법>을 그 무엇보다 더 중요시 하였기 때문에 때론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도리이기도 했단다. <예송논쟁>이 벌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조의 젊은 대비가 아들(효종)과 며느리의 장례절차에 따라 상복을 장자(맏아들)라면 3년을 입어야 한다, 차자(둘째 아들)라면1년을 입어야 한다로 1차논쟁을 벌이더니, 맏며느리라면 1년, 둘째 며느리라면 9개월을 입어야 한다로 2차논쟁을 벌인 사건이 <예송논쟁>이었다. 이 모든 까닭은 <예법>을 숭상한 조선에서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도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왕세자의 입학식>. 중국에서는 남북조 시대의 양나라와 당나라 때 잠시 치뤘을 뿐,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치루지 않은 예법이란다. 그걸 조선에서는 500년 동안이나 대대로 치뤄왔으니 우리 나라의 고유 문화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비교적 다른 책에 비해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우리 고유 문화를 배워 <한국 문화>를 쌓아나갈 수 있는 이 시리즈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틈틈이 읽으며 미처 깨닫지 못한 <한국 문화>를 배우고 싶다(")
입학례 를 통해 이해하는 조선시대 제왕교육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는 작업이다. 즉, 한국문화의 정수를 찾아 그 의미와 가치를 정리하는 일이다. 시리즈는 한 장의 그림 또는 하나의 역사적 장면을 분석하여 한국 문화의 실체를 규명하고 소개한다. 이 책은 시리즈의 제 4권으로 왕세자의 입학식 이다. 흔히 조선시대 왕이라고 하면 절대군주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조선은 유교적 이상국가를 지향했고 왕은 민의의 상징적 권력이었지 절대적 권력을 행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실제로 국가 최고의 권력자가 될 왕세자도 성균관에서는 스승 앞에 꿇어앉아 예를 배우는 한 명의 학생이었다.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왕이 될 수 있었다. 왕세자는 입학례를 치름으로써 비로소 구중궁궐에서 나와 세상에 첫발을 내딛었고, 이를 통해 어른이 됐다. 입학례는 왕세자의 첫 통과의례였던 셈이다. 저자는 왕세자가 성균관에 도착하여 나올 때까지의 과정을 그린 왕세자입학도첩 속 그림들(「출궁도出宮圖」 「작헌도爵獻圖」「왕복도往復圖」「수폐도受幣圖」「입학도入學圖」「수하도受賀圖」)을 통해 왕세자의 입학식을 소개한다.
머리말
1. 왕세자의 입학식 풍경
2. 입학례, 조선 왕실 역사의 축소판
3. 여섯 장의 그림으로 남은 왕세자의 입학식
4.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
5. 풍악을 울려라
6. 왕세자 입학식의 의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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