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창비출판사에서 진행한 학급 문집 만들기 캠페인을 통해 발간된 많은 문집들 가운데 좋은 글들 가려뽑아 묶은 글이다. 할 말 있다는데 들어줘야지 하면서 찬찬히 읽어본다. 복잡한 기교 없이 진솔한 마음들 담은 생활문들이라 쉽게쉽게 읽힌다. 하지만 개중에도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표현들도 제법 있다. 몇 편을 소개해본다.밤해는 넘어가면서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끌어어둠을 덮는지도 몰랐다.가로등을 밝히는 그 밤이 결국은 우리들의 그늘이 서로 맞닿은 형태였던 것이다.하루 종일 내 신발 끝에 끌리던그날의 나의 이력(履歷)지친 기억은 나를 곤히 잠들게 하고,그렇게 너와 나의 하루가 닿는 곳도어딘가 한군데쯤은 있을 것이었다.지난 시간 1학년들하고 황진이의 시조를 공부했다. 기나긴 밤의 한 허리를 베어내어 이불 속에 넣어두었다가 그리던 님이 오신 날 밤이면 더 오래 있고 싶은 마음에 그날 굽이굽이 꺼내보겠다던 그 시조다. 위의 밤이라는 시를 쓴 친구도 그렇게 어둠 이라는 것을 구체적인 사물로 바꾸었다. 해가 넘어가며 어두워지는 것을 마치 이불을 끌어다 덮는 것과 같이 표현했다 .그런데 이불의 출처가 우리의 그림자다. 하루동안 살아온 이력이라고 표현된 그 그림자를 가지고 그날의 어둠을 고요히 덮는다고 표현한 이 발상에 무릎을 탁 쳤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나의 그림자와 또 다른 누군가의 그림자가 맞닿아 밤이 어둠을 모두 덮으면 가로등 불이 푱 하고 켜진다. 그 지점이 너와 나의 하루가 닿는 지점. 꿈 속에서라도 너와 나는 가로등 밑에서 만나 하루를 나누고 있을까 상상하게 된다. 햐... 고등학생이... 이래서 수업 시간에는 일방적 수용보다창작의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 지구 한 바퀴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뭐라고 생각해?잘 모르겠네! 너는?지구 한 바퀴......다른 사람한테는 말을 거는데나한테도 말 좀 걸어 주면 안 될까?다른 사람한테는 웃는데나한테도 좀 웃어 주면 안 될까?다른 사람한테는 따뜻한 손을 내미는데나한테도 좀 내밀어 주면 안 될까?다른 사람한테는 관심을 주는데나한테도 좀 주면 안 될까?다른 사람한테는 사랑을 주는데......난 여기,넌 거기.참 멀다. 지구 한 바퀴.참 외로운 친구인가보다. 이름을 보니 다섯 글자다. 성은 응씨.(아마도?) 이름을 짐작하건대 베트남 쪽에서 온 아이인 것 같다. 그런데 한국어로 이렇게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학적 재능이 뛰어나거나,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메시지가 명확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쉬운 일, 날 보고 웃어 주길, 나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길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꾸미는 말이 없어서 더 담백한 맛이 난다. 닭가슴살같다. 이 친구의 외로움이 더 깊게 다가오는 것은 친구들과 자신의 심리적인 거리를 지구 한 바퀴 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한 데에 있다. 내가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을 함축하면서도 실제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훨씬 더 멀게 느껴진다는 좌절감도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5연과 6연에서 너와 나의 위치를 재확인하면서 형태적으로 마치 외따로 떨어진 섬처럼 표현한 것이 그 거리감을 더 강조해주고 있다. 이렇게 진솔한 작품을 만날 때면 문학사에 대해 50분 내내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부질없다고 느낀다. 물론 알면 도움(지적으로)되는 것들이지만, 자기의 감정과 평소의 생각들을 이렇게 진솔한 언어로, 옛날 말로 하면 사특한 것 없이 나타내보는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위 시들을 보며 새삼 생각한다. 문집에 싣거나 다른 지면에 발표할 만큼 멋진 작품이 안 나오면 어떤가. 밤 을 쓰면서 만나고 싶은 그 사람을 절실하게 떠올렸을 것이고, 지구 한 바퀴 를 쓰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저렇게 글로 토해내었으니 다소나마 답답한 마음이 덜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날 수업 시간 중 잠시라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도록 창작 활동의 비중을 어떻게든 끼워넣어 늘려야겠다.
2013년 창비에서 진행한 ‘우리 반 학급 문집 만들기’ 행사를 통해 만들어진 802종의 학급 문집에서 141편의 학생 글을 가려 모아 묶은 책이다. 할 말 많고 생각 많은 전국 중고생 179명의 엉뚱 발랄 솔직한 이야기가 담겼다.
독자들은 이 책에 실린 141편의 시·소설·수필·감상문 등을 읽으면서 수줍고 서툴지만, 또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환경에 좌절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순간순간의 소소한 기쁨과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썩 잘 버티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하나하나의 속마음을 읽어 나가면서 킥킥거리기도, 코가 찡해지기도, 어이없어하기도 할 때 우리 청소년들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4 엮은이의 말
일상 … 우리의 삶은 주기 함수
14 소소한 빡침 전북 장수고 장원영
15 나만 바라봐 전북 군산여고 전세영, 전숙희
16 내 키 전북 진안 마령중 황민하
18 나의 전쟁 충북 충주예성여중 김의진
20 첫 키스 대구 경북여고 장정희
21 담배 끊자! 부산 구남중 이영진
23 나만의 라면 레시피 강원 춘천한샘고 김솔비
25 서점에서 한나절 보내기 울산 신일중 최은정
27 비 오는 날 부산 성동중 천정재
30 우리의 삶 경기 고양 안곡고 구본승
32 저녁 식사 인천송천고 전우진
34 준비 경기 안산강서고 김지영
36 바람과 나의 일상 경기 파주 교하고 김나경
38 소리 지르고 싶다 충북 청주대성고 연진홍
41 시험 서울 이수중 윤형섭
42 성적표 경남 진주 경상사대부설중 송혜진
44 구멍 난 양말 경기 화성 예당중 송혜원
45 집에 돌아가는 길 강원 춘천한샘고 이예인
46 닭 대구 강북고 김태훈
47 집에 가는 길 울산 범서고 손은현
50 버스 대전어은중 박소연
가족… 잘 표현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54 2013 상록 어린이집 대구 경북여고 박우영
55 가족 울산 대송중 정순철
56 계란 후라이 경기 고양 호곡중 김영현
58 엄마에게 서울 혜성여고 장동은
59 귀지 경기 이천고 천승환
60 빨래 충남 태안고 정가희
62 대지의 아버지 전남 고흥 녹동고 강태성
65 아빠 경기 남양주 덕소중 박시영
67 없을 일 전남외고 김다유
68 대리석, 그리고 나무로 된 바닥 경기 용인 흥덕고 박혜민
79 미운 오리 새끼 경남 경상사대부설중 김희원
81 두 번째 서울 수락고 장나원
92 어느 날 경기 안성 공도중 정수정
95 자리 전쟁 충남 당진 원당중 김준근
98 나의 실수 강원 원주 귀래중 윤나영
100 돼지 저금통 털이범 인천 선학중 원민지
102 내가 가장 억울했을 때 경기 안성 공도중 박채린
104 침묵의 전쟁 경기 안성 공도중 임세은
109 엄마한테 대들려고 하지 말자 충남 당진 원당중 유민정
112 가족 부산강서고 김현준
117 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추억은 영원하다 부산 학산여고 양나영
120 엄마와 나만의 비밀 경남 함안 호암중 박초연
122 엄마는 수험생 서울 불광중 인다현
125 아버지의 선물 부산관광고 조채원
131 언니 경북 울진 평해여중 이지화
133 언니 인천가좌여중 신미선
135 김순례 할머니 전남 고흥 녹동고 이유림
137 할머니 대구 성산고 조현정
138 외갓집 전남 목포혜인여고 박예영
140 수수께끼 전북 진안 마령중 김지수
142 할머니 미안해요 경기 남양주 덕소중 이진영
145 가족 간의 갈등: 모둠 토의록 경기 안성 공도중 이아로, 이연승, 이혜규, 진윤아, 조하영, 최연경
친구 … 그 녀석이 보고 싶어
152 우진아 학교 와라 부산 구남중 신용찬
154 운동장 걷기 충남 금산 추부중 문경희
156 꽃을 닮은 친구, 연희 충남 당진 원당중 김진영
158 학교 경남 함안 호암중 하준석
160 수요일, 점심시간 충남 천안고 박승원
162 개드립 특강 경남 진주고 노휘석, 성창민
166 우리들의 행복했던 바다 대구 현풍고 노정혜
170 열쇠는 청소 용구함에 대구 경북여고 김나영
175 밤 광주 숭덕고 민서현
176 비 오는 날 경북 울진 평해여중 황설미
178 봄바람 대전 신탄진중 최은향
180 꿈을 가져다 준 아이 경북 포항중앙여고 안가영
183 가짜 눈 친구 경북체고 김락원
185 연필깎이 광주 숭덕고 김지연
203 지구 한 바퀴 경기 고양 일산동중 응옌티칸린
205 서리 충남 태안고 이시형
206 도서관 오빠 경기 수원여고 김효영
208 한입만족 광주동성여중 김세아
211 김지훈 선생님께 서울 가원중 고재현
213 ‘쌍화점’ 에피소드 강원 원주 귀래중 정주희
215 몰래 만드는 재미 부산 동의중 유진제
216 내 방귀가 아니야 울산 대송중 김두영
217 우리 반 관용어 사전 경기 구리 인창고 2학년 8반
220 글 선정에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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