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접하기 힘들었던 많은 비극적인 사건, 사고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요즘. 단순히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함이라고 여기기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다는 단순한 믿음에 기초해 핑크빛 미래를 그려왔던 우리에게 지금의 이와 같은 불편함은 의문점으로 다가온다. 과연 우린 옳은 길에 서 있는 것일까? 꼭 이 방향으로만 걸어야 하는 것일까?
다양한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는 상당한 두께의 책은 언제나 읽는 게 버겁다. 이 책도 두께만 놓고 본다면 고개를 젓게 되는 부류의 책이다. 그렇지만 내가 속한 사회, 곧 내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내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삶과 동떨어지지 아니한, 지금 내가 속한 이 사회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느 책보다도 쉬울 수가 있다.
어디서부턴지는 잘 모르겠으나 생각해보면 인류는 분명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과거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몇몇 나라들이 여전히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는 하나 그 숫자만 놓고 본다면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이들의 수는 현저히 감소한 게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여도 꿈도 꿀 수 없었던 많은 전자제품들이 우리의 삶을 파고들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된 것도 우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수적인, 하지만 가벼이 여겨서는 절대 안 되는 효과들이 있었다. 지난 여름이 그러했고 이번 겨울도, 과거와는 사뭇 다른 패턴의 날씨가 펼쳐지고 있는데 이를 정상으로 여기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점점 더 그 빈도가 잦아지는 대형 지진, 허리케인, 쓰나미 등등.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고 있는 자연의 경고들을 따라 올라가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분별했던 지난 날과 만나게 된다. 이에 대한 충분한 공감이 전세계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진 않으나 세계 각국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발전을 위해 인간이 행하는 많은 행위들에 제재를 가하려 들고 있다. 허나 이미 어느 정도의 발전을 이룬 국가와 이제 막 개발에 박차를 기하려 들고 있는 국가간의 입장 차이는 현저하다. 만일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모든 국가에 드리운다면 이는 특정 국가에 대한 특혜나 차별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다. 또한 언제나 그렇듯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완벽한 제재란 존재할 수 없으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머지 않은 훗날 우리 자신의 파멸로 이어진다 해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환경 문제는 오늘날 인류가 처한 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물론 이도 심각하지만, 우리 인간을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몇 해 전 난치병, 불치병의 치료를 가능케 한다는 이유로 인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잣대가 허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온갖 찬사를 받기도 했던 연구를 기억한다.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의 권리를 앗아가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명백한 해답이 없다. 허나 제 부모의 사랑에 의해, 좀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신의 고귀한 손길에 의해 스스로가 창조되었다고 믿는 이들의 믿음은 이러한 시도들이 지속됨에 따라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질병 치료를 위해 그와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다른 클론이 만들어지는 것은 더 이상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은 객관성 그 자체이며 가치에 대한 평가는 그 과학의 사용만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고도 하지만, 그렇다 하여 모든 연구가 과학이기에 자유로이 행해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이 선다. 과학 아닌 종교의 영역을 살펴보아도 우리 자신의 얕은 존재감은 더더욱 짙어질 따름이다. 많은 종교들이 평화를 노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참으로 많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해 타인을 배척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견고함을 가능케 하는 다양성의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다양성은 그러므로 그 다양성이 교류와 결합되어 있을 때에만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일 수 있다. 획일화는 자폐와 똑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이 두 경우, 대화는 비생산적이며, 문명은 쇠퇴한다.
결국 현대의 생물학과 유전학은 인종차별적 편견들을 어떤 점에서도 확증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 과학에게는 이런 인종차별적 편견들을 구원하기 위해 여전히 너무 자주 나타나는 생물학적 테제들을 거부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지만, 확실히 불충분하다. 인종주의가 번성하기 위해 인종들이 생물학적으로 실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반인종주의적인 참여의 기초를 과학에서 찾으려는 바람도 오해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과학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철학적인 개념의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반인종차별 투쟁, 모든 인간에게 그들의 다양성을 넘어서 평등한 존엄성이 있음을 인정하기 위한 투쟁은 무엇보다도 도덕적인 성질의 것, 어떤 심오한 확신의 반영인데, 이 확신은 분명 과학자의 배타적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p511,512
아마도 진작에 물었어야만 하는 바이다. 지금 우리는 옳은 길에 서 있는가. 이 길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만일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대답이 긍정적이지 않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과감히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에의 수정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삶은 무모함만으로는 지탱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1997년부터 유네스코(미래전망 분과와 철학 및 인문과학 분과)가 미래의 중대한 쟁점들에 관한 세계적인 논쟁에 기여할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21세기의 대화 의 10번째 부터 20번째의 모임에서 제시된 미래 전망의 성찰들을 모은 책이다. 회의에 참석한 전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 지성인, 창작자 또는 정책결정권자들의 생각과 정신이 글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2001년 9·11사건 직후 기획된 제2차 21세기의 대담 에서 가치들은 어디로 가는가? 라는 일반 주제를 중심으로 모인 중요한 국제적 참가자들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자크 데리다, 장 보드리야르, 폴 리쾨르, 줄리아 크리스테바, 제레미 리프킨, 폴 케네디, 자크 들로르, 나딘 고디어 등 세계적 지성 49인의 열띤 논쟁과 빛나는 성찰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들어가기에 앞서
서문
일반적인 서론
제1부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서론
제1장 황혼, 가치들의 충돌인가 혼성화인가?
제2장 비인간의 도전들 - 21세기 사회의 가치는 어떤 것들인가?
제3장 진지한 가치들인가, 하찮은 가치들인가?
제4장 심미적인 것은 정치경제와 윤리의 최상 단계인가? 가치들의 심미화를 향하여?
제5장 새로운 가치들의 창조를 향하여?
제2부 세계화, 신기술들과 문화
제1장 세계화와 제3산업혁명
제2장 신기술과 문화
제3장 우리는 한가지 형태의 문화적 세계화를 향해 가고 잇는가, 아니면 여러형태의 문화적 세계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어떻게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할 것인가?
제4장 언어들을 위한 어떤 미래인가?
제3부 새로운 사회 계약을 향하여?
제1장 새로운 사회 계약과 모두를 위한 평생교육
제2장 자연계약과 개발
제3장 21세기의 문화 계약은 어떤 것인가?
제4장 윤리 계약을 향해서?
제4부 과학과 지식, 그리고 전망
제1장 유전학의 혁명과 인간
제2장 세계화와 유전자 혁명 시대가 품고 있는 새로운 인종주의의 얼굴
제3장 자기에 대한 앎 - 영혼의 병에 대한 전망과 예방
제4장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우주의 미래와 마주한 인간
결론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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